미끄러지는 원리: ooo의 만화에 관하여

MA 2018. 8. 5. 22:10


ooo의 만화에서 모든 것은 언제나 미끄러진다. 마치 <치는 만화>에서 예상을 배반하는 스트라이크를 성사시키는 볼링핀들처럼 인물이 처음에 지녔던 목적은 어떤 방식으로든 실패하고, 발화되었던 말은 반복되면서 본래 취했던 의미를 상실하고 배반한다. 설명과 소통의 구체성이 부재하는 애매모호한 상황 속에서 그러한 미끄러짐은 필연적인 사태일 것이다(그리고 언제나 그 미끄러짐이 실소를 유발한다). 하지만 그것 뿐인가? ooo의 인물들은 단지 상황의 애매모호함에 의해서만 미끄러질 뿐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의 모든 작업은 한낱 말장난에 지나지 않지 않을까? ooo의 작업들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점은, 그 어떤 인물도 자신이 처한 환경의 변화를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령 <명탐정 고난>의 첫번째 컷에서 세 인물은 한 원 안에 모여있었는데, 마지막 컷에선 그 원은 온데간데 없고 넓고 각진 바닥만이 그들을 받치고 있다. <Ok go>에서 택시를 잡고 출발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첫번째 컷의 파란 하늘이 세번째 컷에선 노을로 바뀌어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작품에서 매 컷마다 배경을 이루는 색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어있다. 산만하다 해도 좋을 정도의 구성. 그러니까, ooo의 인물들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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